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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 기프트 닷컴 고려(高麗)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여 년간 한반도에 위치했던 한국의 불교를 국교로 삼은 전제군주정 국가이다.

by 조아 기프트 닷컴 2025. 12. 19.

조아 기프트 닷컴 고려(高麗)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여 년간 한반도에 위치했던 한국의 불교를 국교로 삼은 전제군주정 국가이다.


918년 왕건이 자신의 주군이었던 태봉의 국왕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면서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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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신라로 나뉘어 대치하던 후삼국시대는 936년에 끝나고, 이후 약 456년 동안 총 34명의 군주가 고려를 통치했다. 고려는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의해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 함경북도의 상당수 지역들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다.[28]

국호는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국을 표방한 만큼 후기 고구려의 국호인 '고려(高麗)'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고려와 고구려는 사실상 같은 국명을 썼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꾸었고, 중국 사서에서도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고려로 표기했다.[34]

고려시대는 중국식 역사서가 편찬될 만큼 한문학이 발달된 시기였기 때문에 후연, 후당, 후조 같이 자국을 고려(고구려)땅에서 일어난 나라라고 하여 왕건이 건국한 고려 역시 "후고려(後高麗)"라고 표현한 기록도 종종 발견된다. 사례를 보자면 태자사낭공대사비나 대각국사문집 등이 있다.

조선 초의 기록인 《동국정운》 기준으로 '高麗'의 중세 한국어 발음은 '고ᇢ롕〮(예일: kwòwlyéy)'였다.[35] 고려시대 당시의 발음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동국정운이 쓰여진 시대가 고려시대와 멀지 않으므로 고려 후기에는 비슷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조건 억지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중국 일각에서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영향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인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 서희와 요나라 소손녕과의 회담에서도 소손녕이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니 통일 신라가 지배한 적이 없는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북부의 영토 획득에 고려는 정당한 권리가 전혀 없음을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 서희가 고려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하여 평양을 수도 중 하나인 서경으로 삼은 나라이니 거란이야말로 그들이 동경요양부(옛 고구려의 요동성, 현 랴오양시)로 삼은 고구려의 옛 땅을 정당한 권리도 없이 점거한 것이라고 반박하며, 소손녕의 오해를 정정했다. 그러자 소손녕 또한 서희의 주장에 수긍했는데, 이 일화가 와전되어 서희가 소손녕을 속였다고 아는 사람도 있지만 서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고려의 국호 뿐만 아니라 분사 제도를 통해 고려의 수도 개경의 일부 관아들이 서경에도 설치되는 등 고구려의 옛수도 평양을 제 2의 수도로 대우했다. 서경의 특별 대우는 훈요 10조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이를 남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다. 소손녕은 유목민족인 거란족이었기 때문에 비록 거란족의 요나라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세워진 나라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만주와 몽골에 거점을 둔, 한족과는 별개의 민족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당대 중국인의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이후 서긍을 포함한 송나라인들의 인식을 비추어볼 때 오히려 한족 사회에서는 고구려의 정체성을 고려인들이 이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정통 중국이라 할 수 있는 송나라의 지식인인 소식은 고려를 비칭할 때 고구려를 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단어인 맥적(맥족 도적)을 그대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송의 서긍이 고려를 직접 방문하고 저술한 고려도경에서도 고려는 고씨 왕조가 망했다가 왕씨 왕조가 들고 일어난 것, 즉 고구려에서 고려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서술했다. 그외 이후의 시대인 명나라 대에는 "북원의 요양성(遼陽省) 평장사(平章事) 유익(劉益)과 우승(右丞) 왕카라부카(王哈刺不花) 등이 명나라에 귀순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명나라가 주민을 이주시킬까 근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양이 본시 우리 땅이었으므로 만약 고려가 청하면 이주를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통보하여 왔다."라는 기록도 있다. 요양성은 옛 요동성을 가리키는데, 이에 의하면 원나라 장수와 고려 정부 모두 요동이 옛날에는 고려의 땅이었다, 즉 고구려와 고려는 같다 인식하고 있었다.

오늘날 주몽이 건국한 나라를 고구려로, 왕건이 건국한 나라를 고려로 표기하는 이유는 서로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구분할 필요를 느낀 건 고려 당대에도 마찬가지여서,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중간에 국호 변경이 있다고는 적고 있지만 표기 자체는 쭉 고구려라고 기록했다. 참고로 궁예가 건국한 태봉의 초창기 임시 첫 국호 또한 후고구려 즉 고려였으나[36], 겨우 3년 동안만 사용하다 버리고 이후 국호를 마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봉으로 변경하면서 완전히 태봉으로 성립되었다.

한국의 외국 이름인 'Korea'의 어원을 제공한 나라가 왕건이 건국한 고려일 수도 있지만, 장수왕 대에 정착된 고려에서 이미 어원이 형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어느 쪽이든 KOREA라는 명칭의 근원이 고구려임은 같다. 코리아의 어원이 왕건이 건국한 고려라고 해도 그 고려라는 명칭이 고구려를 계승하면서 전달된 국호이기 때문이다.

고려의 계승의식은 고구려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인 세력권은 고구려의 옛 중심지를 차지했지만 북방영토는 대거 상실했고, 그 대신 백제와 신라 영토의 비중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고구려+신라+백제를 다 품은 것이다. 이는 한족의 개념이 하상주나 진이 아닌 한나라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에 대해서는 고려/평가 항목에 보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출처: namu.wiki